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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35. July 2023

경력개발 인터뷰

세상의 끝
기후변화 최전선에 선
극적인 연구자

이원상 본부장(wonsang@kopri.re.kr)


극지연구소 빙하연구본부 이원상 본부장의
경력개발 스토리

‘해변에서 수영을 한 뒤 모히또 한 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여름휴가의 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의 휴가가 100년 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2021년 IPCC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경우 2100년까지 해수면이 1.1m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미래,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끝 극지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관측하고 예측하는 과학자. 극지연구소 이원상 본부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관심, 지진학에서 극지연구로

Q. 본부장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극지연구소 빙하환경연구본부에서 근무하는 이원상입니다. 최근, 기후변화로 지구가 뜨거운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남극과 북극 지역의 얼음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빨리 녹아서 전 지구의 해수면을 상승시킬지 예측하는 연구를 수행하고있 습니다.

Q. 학위 이후 현재까지의 경력 스토리를 소개해주세요.

학부 때 지질과학을 전공한 후 지구물리학의 지진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진학에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지진파 산란’을 연구했어요. ‘스캐터링(scattering)’이라고 빛이 산란하듯 지진파도 정해진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군데를 튀겨 가면서 이동하는 현상입니다. 박사과정 중 1년 동안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센다이 지역 도호쿠 대학에 장기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2년 간 박사후연구원을 하고 2006년에 극지연구소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남극탐사 중인 이원상 본부장

Q. 지구물리학, 그 중에서도 지진학을 연구하고 극지연구소에 입사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 게 많았고 남들이 해보지 않은 신기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박사후연구원 과정중에 ‘우주인 선발대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서류전형까지 합격했는데 태풍으로 체력검사 일정이 취소되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극지연구소에 계신 연구실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연구소에 ‘수중음향학’ 분야가 있는데 바다 속 해저 화산활동, 고래소리, 얼음 부딪히는 소리를 연구한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전공이 지진학이고 파형을 연구했으니 크게 차이가 없겠다, 우주가 아니면 극지를 가보자는 마음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입사를 할 때는 연구를 하면서 극지에 한두 번 정도는 가볼만하겠다 싶었어요.

Q. 남다른 도전의식으로 ‘지진학’ 전공이 ‘극지연구’로 이어지게 된 점이 흥미롭습니다. ‘한두 번 가겠지’라는 예상과 달리 연구소 입사 후 남극에만 14번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소에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남극 세종과학기지로 탐사를 가게 됐습니다. 연구선을 타고 1~2주간 세종기지 부근 브랜스필드 해협이란 곳에서 해저 화산 활동소리를 듣는 연구를 했는데 그 경험이 색다르고 좋았어요. 가는 동안 배멀미를 할 때는 정말 괴로웠는데 몇 달이 지나면 그 사실을 잊고 남극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그러다보니 남극에만 14번 다녀왔습니다.
2010년까지는 세종기지 근처에서 배를 타면서 연구를 했고요. 2014년 장보고기지가 건설되기 이전인 2011년부터 남극 대륙 거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2019년부터는 남극에서 가장 얼음이 빨리 녹아 ‘운명의 날’이라고 불리는 ‘스웨이츠(Thwaites) 빙하’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2020년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 인근 지역을 탐사 중인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출처: 극지연구소)

세상의 끝에서 미래를 열어가는 연구자가 되다

Q. 극지에서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무엇인가요

기후변화의 영향을 예측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크게 두 가지, 빙하 관측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예측 모델의 정확성을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현장에 가서 관측하고 축적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얼음이 얼마나 빠르게 녹는지, 예상보다 더 빨리 녹고 있다는 가속화 현상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 큰 성과입니다.
또 연구를 하면서 자연의 회복력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열이 얼음 밑으로 파고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얼음이 녹은 융빙수가 바깥쪽으로 커다란 회오리를 형성을 하면서 열을 막아주는 현상들을 발견했어요. 자연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반발하고 있는 모습이었죠. 사람들이 계속 탄소를 배출하게 되면 이렇게 반발하는 힘도 소용없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내고 있습니다.

Q. 얼음과 바다 위에서 극지의 현상을 관측하고 밝혀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극지에서의 연구 환경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위험한 상황은 없으셨나요?

극지에서 연구를 할 때 몇 가지 위험 요소가 있긴 하지만 예측 가능한 위험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위험은 추위입니다. 지금까지 남극에서 가장 춥다고 기록된 게 약 영하 90도에 육박하고요. 남극 주위를 빠르게 돌고 있는 남극순환류가 중저위도의 따뜻한 바닷물의 유입을 막고 있어서 냉동실처럼 차가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골짜기가 깊은 크레바스도 위험요소 중 하나입니다. 빠졌을 때 어떤식으로 대처를 해야 되는지 안전 훈련을 철저하게 받고 전문 안전요원 분들과 위험 요소들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합니다.

Q. 그렇다면 반대로, 극지연구소에서 연구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영화에서만 보던 대자연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현장탐사 중에 얼음 위에 올라가 있으면 온 세상이 하얗고 소리도 안들리니까 진짜 우주에 나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바다에서 관측을 할 때는 고래, 펭귄, 물범이 돌아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어요. 무엇보다 미래에 경험할 만한 내용을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 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극지연구소는 ‘세상의 끝에서 미래를 열어가는 연구소’라고 할 수 있어요. 연구를 통해 지구의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런 부분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지.’라는 처방전을 잘 써드리는 게 극지연구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 합니다.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난센 빙붕을 관측 중인 모습 (출처: 극지연구소)

극지연구를 위해 중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에 열린 마음

Q. 본부장님처럼 극지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요?

극지연구소에서는 물리학, 생물학, 지구과학, 공학, 정책분야까지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극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연구하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모여 있기 때문에 소통과 융합이 가장 중요한 역량입니다. 나 혼자 앉아 고민하고 있으면 이 커다란 극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간에 연구 내용에 대해서 소통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다른 연구도 비슷하겠지만 극지연구는 대부분이 실패와 고난의 연속이에요. 실패가 기본이기 때문에 여기서 계속 배워나가는 그런 자세로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이 두 가지를 기억하시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Q. 극지연구를 꿈꾸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넓고 깊게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극지연구는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은 편들이 함께 도와줘야 넓고 깊게 팔 수 있어요. 본인의 다양한 경험과 함께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께 도움을 요청해서 더 깊게 파내려갈 수 있도록 협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공 지식은 물론이고 다른 분야와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학생 때 경험해 보면 좋겠어요. 학생 때 스펙트럼을 확실히 넓히지 않으면 평생 이런 기회를 다시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바쁘게 공부하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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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과 북극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이원상 본부장, 공돌이용달)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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