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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33. May 2023

과학기술 이야기

유전자 치료시대
열린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ywlee@chosunbiz.com


김빛내리 서울대 석좌교수 인터뷰

유전자 조절하는 마이크로 RNA 규명한 김빛내리 서울대 석좌교수


김빛내리(54)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는 지난 2월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에 리보핵산(RNA) 치료제에서 핵심이 되는 ‘다이서’ 단백질의 작동 원리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최초로 규명한 논문도 같은 학부의 노성훈 교수와 함께 발표했다. 과학자가 평생 한 번 발표하기도 힘들다는 네이처 논문을 백투백(back-to-back) 홈런처럼 하루에 두 편이나 낸 것이다.



김빛내리 IBS RNA 연구단장


생명의 설계도는 세포에 있는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에 담겨있다. DNA 유전정보는 필요한 부분만 전령리보핵산(mRNA)으로 옮겨져 생명 현상을 좌우할 다양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길이가 짧은 이른바 마이크로RNA는 그와 달리 다른 mRNA에 달라붙어 단백질 합성을 차단한다. 마이크로RNA를 모방해 만든 RNA치료제는 같은 방법으로 특정 유전자가 과도하게 작동하면서 생기는 병을 막을 수 있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RNA의 생성과 작동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늘 한국인 노벨상 수상 1순위로 꼽힌다. ‘여성과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을 받았으며, 국내에서는 호암상, 아산의학상, 최고과학기술인상을 휩쓸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미국 국립과학원과 영국 왕립학회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정됐다. 과학계 최고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와 생명과학 최고 학술지인 셀(Cell)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김빛내리 교수는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유전자 조절에 좌우된다.”며 “그 길목을 잡고 연구한 덕분에 이제 질병 유전자만 골라 치료할 수 있는 날이 목전에 왔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공략한 길목은 바로 RNA이다. DNA 유전정보가 RNA를 거쳐 단백질을 만든다는 점에서 RNA를 만드는 단계가 유전자 조절에서 가장 결정적이란 것이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RNA 연구 분야에서 8년 만에 새로운 대형 연구성과를 냈다.


마이크로 RNA 생성경로와 기능



유전자를 조절하는 마이크로RNA는 ‘드로셔’와 ‘다이서’라는 효소 단백질이 차례대로 기다란 RNA를 잘라내면서 만들어진다. 김 교수는 2015년 셀에 드로셔의 기능을 밝힌 논문을 발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IBS RNA연구단 우재성 서울대 교수와 함께 드로셔의 3차원 구조를 처음으로 규명해서 역시 셀에 발표했다. 이번에는 다이서의 기능과 구조를 동시에 밝혔다.

김 교수는 “다이서는 마이크로RNA가 최종 합성되기 직전 단계”라며 “이번에 다이서가 더 잘 결합하는 유전정보도 알아내, RNA 치료제의 생산량과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일부 암 환자에서 다이서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도 알아내 암 발병 과정을 이해할 새로운 실마리도 제공했다.

RNA 치료제는 이미 질병 치료에 쓰이고 있다. 간질환을 치료하는 마이크로RNA 치료제가 미국에서 5개 허가받았다. 현재 바이러스 RNA치료제들도 임상시험 중이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간염바이러스의 유전자를 공략할 마이크로RNA를 설계하면 난치병인 만성간염을 치료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간염 바이러스의 DNA가 없어지지 않아도 중간 단계인 RNA가 없어지면 병을 완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지도 완성


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동안 코로나바이러스의 RNA 유전정보도 세계 처음으로 완성했다. 사람은 유전 정보가 DNA에 있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RNA에 담겨있다. 김 교수는 2020년 국내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자마자 바로 질병관리본부 (현질병관리청)에서 시료를 가져와 해독했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RNA 연구는 앞으로 닥칠 새로운 감염병 대유행 대응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마이크로RNA는 어떤 유전자를 억제하려고 할 때 쓸 수 있고, mRNA백신은 유전자를 새로 넣거나 양을 늘리는 방식”이라며 “상황에 따라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백신용 mRNA가 세포에 들어가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mRNA 백신 원리가 나온 지 20년 만에 실제 백신이 개발됐다. 유전자를 조절하는 RNA 간섭현상이 2000년대 초에 밝혀지고, 2018년 마이크로RNA 치료제가 첫 승인을 받았으니 역시 20년 정도 지나 성과가 나온 셈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는 “RNA치료제는 공략 대상이 화학약품보다 훨씬 넓고 전달법만 발전하면 급성장할 수 있다.”며 “단백질인 항체 의약품보다 제조도 쉽다.”고 했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막는 지원 필요


문제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기반이 될 연구인력 인프라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박사를 마치고 외국 기업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 늘고 있고, 학령인구 감소로 국내 대학원생도 줄고 있다. 김 교수는 “생명과학 분야는 학부, 대학원생 절반이 여학생”이라며 “연구인력 확보 측면에서도 임신, 출산으로 인한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빛내리 IBS RNA 연구단장



김 교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를 모범 사례로 들었다. 그곳의 연구원들은 출근하면서 소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다가 점심이면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이나 연구기관도 어린이집을 두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린이집이 실험실에서 먼 곳에 있다면 같이 점심 먹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김 교수는 “이스라엘 연구 책임자가 서너명씩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도 육아 지원 덕분”이라며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yw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