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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1 · April 2022

Trend&Brief

직원경험 설계자로서의 HR 역할 전환

장영균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왜 직원경험(EX)에 주목해야 하는가?

최근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이 직원경험(employee experience, 약칭EX)에 주목하고 있다. 직원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국내 산업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고객경험(Customer eXperience, CX)이나 유저경험(User eXperience, UX)은 오늘날 기업들이 거부할 수 없는 메가트렌드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 본질은 사용자나 소비자의 영향력 증가에 대한 기업의 전략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직원경험은 조직 구성원들의 영향력이 증가함에 따라 기업의 조직관리 차원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전략적 대응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기업들은 직원경험관리를 통해 인재들이 근무 현장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 세계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needs)을 넘어서서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wants)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제공함으로써 직원들의 몰입도와 행복도를 높여주고, 이는 궁극적으로 조직의 성과로 귀결된다.

직원경험 등장 배경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세 가지 커다란 추세적 변화가 있다.
첫째, 일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 과거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삶 보다 일과 직장에 더 우선순위 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 조직을 위해 삶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조직에서 얻는 성과물인 급여와 승진 등이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일 중심의 삶은 심각한 직무 소진,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 가정 갈등을 초래하여 급기야 우리나라가 노동생산성 OECD 최하위국의 불명예를 얻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반성으로 우리 사회는 소위 ‘일과 삶의 양립’(이른바 워라밸)을 이상적인 일하는 방식으로 재정의하기 시작했고, 워라밸 열풍이 불기도 했다. 워라밸의 본질은 직장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직장 밖의 여가 생활과 자기만족적 삶으로 재충전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보다 더 몰입하기를 기대하는 모델이다. 워라밸 모델은 그 도입 취지 자체는 전적으로 공감하나, 여전히 직장은 으레 ‘오래 있기 싫고, 사람을 피곤하고 지치게 하는 곳’임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결국 숨막히는 직장이 아닌 자유로운 직장 밖에서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행복에 대해 기대할 것이 전혀 없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결국 반쪽 짜리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워라밸의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직장 밖의 삶에서 더 큰 만족감과 행복을 얻으면 얻을수록 직장은 상대적으로 더욱 머물기 싫은 곳으로 전락하며, 업무에 몰입은 커녕 반(反)몰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직원경험 모델은 워라밸 모델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모델이다. 직장은 그저 불행하기만 한 일터가 아니라 직원의 자아가 실현되는 ‘삶터’가 되어야 하며,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장소가 아니라 행복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장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즉, 일과 삶의 통합(Work Life Integration)이 직원경험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이러한 직원경험 모델은 일이 삶의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삶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또한 일은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의 집합체로 인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직장은 직원과의 살아있는 유기체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이어야 하며, 기업은 일종의 계획성을 가지고 효과적인 경험설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부정 경험을 최소화하고 긍정 경험을 최대화하여 행복감과 몰입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일하는 사람이 변하고 있다. MZ세대가 노동시장에서 점차 중심 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이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이전 세대들과 구분되는 특성을 보인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MZ세대는 약 2,280만 명으로 국내 인구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MZ세대는 인터넷, 고도의 소통 기술과 도구, 스마트폰을 어려서부터 경험하면서 성장해 온 세대이다. 따라서 익숙한 ICT 기술을 통해 정확한 정보 습득과 처리에 상당히 익숙하다. 그러나 한편 MZ세대는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저성장을 겪으면서 성장해 왔다. 그 과정에서 취업난과 자산 취득 기회 상실 등을 경험한 ‘N포 세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들은 노력이 취업, 결혼, 주택구입 등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워라밸을 기반으로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최우선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MZ세대의 특성은 직장인으로서의 행동 경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수직적 계층과 권위적 조직문화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소통과 수평적인 개인주의 조직문화를 선호한다. 그들은 조직과 개인 간의 균형적 발전 관계 속에서 개인적 삶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임금이나 승진과 같은 거래적 보상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일의 의미를 찾고 직장에서 겪게 되는 긍정적 경험을 통해 일에 몰두 하는 경향이 있다. 종합하면, MZ세대가 점차 중심 인력이 되어 가고 있고, 가치와 경험을 중시하는 세대라고 한다면, ‘경험’을 관리 포인트로 삼고 있는 직원경험 모델은 MZ세대의 관리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일하는 환경이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챗봇,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PA, 빅데이터 기반 애널리틱스 기법의 도움으로 업무의 편의성이 증대되었다. 이제는 직원들이 과거와 다른 차원의 일터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 직원들의 동기부여 상태를 의미있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과거와 다른 경험을 해야하고, 이것이 조직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접촉이 어려워지고 기업들은 전격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재택근무는 업무 효율성 측면의 장점도 있었지만, 동시에 기업에 많은 고민거리도 안겼다. 리더들은 구성원이 개인 공간에서 과연 일에 집중하고 있는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과거보다 많은 과업을 부여하는 경향을 보였다. 구성원도 자신이 느슨해지지 않았고,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업무에 몰입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리더들과 구성원 모두 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울러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칫 과정을 무시하고 성과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관리 방식이 흐를 위험성도 있다. 이에 따라 직급을 막론하고 임직원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해지고 있으며, 리더와 구성원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도 커지고 있다. 이와 같은 업무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직원 경험에 관심을 두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 직원경험 설계자가 되기 위한 HR의 역할은?

    직원경험은 직원들이 직장 내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 세계를 통칭하는데, HR이 직원의 경험을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직원들이 언제 어디서 무슨 경험 어떻게 하는지 등을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 파악된 경험 정보들을 관리와 설계가 가능한 수준으로 체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직원경험의 주요 설계 포인트들을 다음 세 가지 질문으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무엇을 경험하는가? 직원경험 설계는 직원들의 모든 경험 보다는 중요 경험에 집중한다. 중요 경험이란 Moment of Impact (MOI) 혹은 ‘moment that matters’ 라고도 불리는데, 직원의 삶에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던 기억에 남을만한(memorable) 구체적이고 중요한 경험을 의미한다. 가령, 이직을 마음먹게 만들었던 경험, 업무의 성취감과 몰입을 가져왔던 경험, 깊은 동료애를 느꼈던 경험 등이 관심의 대상이다. 댄 & 칩 히스 형제가 출간한 <순간의 힘 The Power of Moments>이라는 책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강렬한 순간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경험의 4가지 원리를 소개하는데, 황홀감(elevation)을 느낄 만한 경험, 깊은 통찰(insight)을 얻게 만든 경험, 자신에 대한 자부심(pride)을 느끼게 만든 경험, 타인과의 교감(connection)이 형성 되었던 경험은 인간의 기억에 오래 유지되고 삶의 중요한 순간으로 인식된다고 한다.


    [그림1] 댄&칩 히스 형제가 출간한 ‘순간의 힘The Power of Moments’

    둘째, 어떻게 경험하는가? 중요 경험을 파악하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되고, 그 경험을 직원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핵심경험변수 또는 Key Experience Factor(KEF)라는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핵심경험변수는 직원들이 중요 사건(MOI)을 경험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이자 속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가 상사로부터 기계적으로 하달되어 그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 수 없고 조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해서도 불분명할 때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반면, 업무에 상당한 재량권과 자율성이 부여 되어 자신의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그 업무에 관해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서 업무에 대한 경험 자체를 MOI 라고 한다면, 그 경험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 게 만든 속성은 KEF이며 여기서는 ‘일의 의미감(Meaningfulness)’이라고 할 수 있다. 딜로이트는 2017년 보고서에서 미국 직장인들이 경험하는 5가지 핵심경험변수를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의미있는 일, 조직의 지원시스템, 긍정적인 업무환경, 성장 기회, 리더십에 대한 신뢰을 들고 있다. 다섯 가지 모두 중요한 경험 속성들이며 이것들이 존재하거나 부재함 따라 직원들은 다양한 긍정 사건과 부정 사건을 경험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언제 어디서 경험하는가? 직원들의 MOI 경험은 특정 시점이나 원천에 제한되지 않고, 직원생애주기(Employee Life Cycle)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발생한다. 직원생애주기는 입사부터 퇴사에 이르기까지 직장 생활의 전 생애를 의미하는데, 직원들은 생애주기를 겪으며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어떤 직원은 입사 시점에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온보딩 프로그램을 통해 긍정 경험을 한다. 또 어떤 직원은 다른 직무로 전환된 후에 업무적합성 부족으로 고통을 겪기도 한다. 또 어떤 직원은 직원들을 자신의 선호에 따라 차별대우하는 리더를 보며 부정적인 경험을 하기도 한다. 즉, 직원의 경험은 매우 다양하고, 특정 시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주기 전반에 형성되므로 직원경험은 포괄적, 총체적 관리가 바람직하다.

    직원경험 설계 측면에서 HR은 직원들의 생애주기에 따라 일종의 경험 여정(journey map)을 그려보고, 각 여정의 스테이지별로 발생하는 주요 긍정 경험을 강화시키는 방안과 부정 경험을 제거하는 방안을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경험 여정은 직원의 입사에서 퇴사까지의 전체 여정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전국 지도), 세부 스테이지 별로 상세한 여정(도시 지도)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체 여정에서 업무 수행에 대한 직원들의 부정 경험이 중대함을 파악한 후,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과제 중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회의 경험’을 설계하는 과제가 도출 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상세 여정을 그려볼 수 있다.

    이러한 여정을 도출한 후 각 여정의 개별 단계에서 발생하는 긍정적, 부정적 경험들을 직원들로부터 정확하게 센싱 한 후 경험 개선 설계안의 근거로 활용한다. 필자가 직접 참여한 한 프로젝트에서는 ‘회의실 예약’과 관련해서만 10개 이상의 긍정·부정 경험이 파악되었는데 (예를 들어, 회의실 예약 정보가 사내 전산망에서 공유가 안 되어 회의실 중복 예약이 발생한 경험, 회의실 예약을 변경, 취소하는 기능이 너무 복잡하여 불편했던 경험, 비대면 회의가 잦아지면서 큰 회의실은 남아돌고, 1인 콜 부스 스타일의 회의실 예약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경험 등) 직원 경험의 관점으로 구성원들의 경험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면 얻지 못할 귀한 정보들이었다.

    이제 바야흐로 HR은 직원경험의 설계자(Designer)로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시점이 되었다. 경험 설계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공감과 서비스 마인드이다. 직원을 조직의 제도와 정책을 수용하고 실행하는 ‘최종 사용자’로 바라보고 그들의 경험 세계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HR을 as admin이 아닌 as service로 재정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장영균 교수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장영균 교수

    서강대학교 경영학부